여행스케치/아름다운길

경북 문경 새재(081026)

하시청천 2008. 10. 31. 11:07

매년 10월에 실시하는 고등학교 정기산행이다.

산행을 별로 좋아하지않는 혹은 디리가 불편한 부인들을 위해서 문경새재를 넘는 트래킹코스를 잡았다.

이코스는 2006년 5월 14일 대구동창회와 합동산행한적이 있다. => 경북 문경 새재(060514)

 

10:40 소조령 

 

10:53

 

11:08

 

11:15

 

11:19 

 

11:21 조령관

 

 

 

11:22 성황당. 이화령에서 넘어오는 길목이다.

 

11:23 백두대간길 약수터 => 백두대간 제30구간:이화령~조령산~조령(080726) 

 

11:24 군막터, 하늘재로 가는 길목이다. => 백두대간 제31구간:조령~마역봉~탄항산~하늘재(080809)

  

 

  

11:45 책바위

인근에 살던 큰 부자가 자식이 없어 걱정이 된지라 하늘에 치성을 들여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하나 얻었으나, 자라면서 점점 허약해지니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의 몸을 고치고자 유명하다는 문경도사에게 물으니 "집터를 둘러 싼 돌담이 이아들의 기운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직접 담을 헐어 새재의 책바위 뒤에 쌓아 놓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한다. 이에 아들은 돌담을 헐고 삼년에 걸쳐 돌들을 책바위 까지 옮기어 나르니 몸은 자연히 튼튼해지고 공부 또한 열심히 하여 장원급제까지 하였다 한다.

이후, 이곳을 넘나드는 과거객은 '책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를 한다' 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건강과 합격을 기원하는 영험스러운 곳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특히 입시철이면 소원성취를 비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1:48

  

11:55 높고푸른 가을하늘 

 

11:56

 

11:59  

 

11:59 

 

12:02  상처난 소나무. "V"모양의 이상처는 일제말기(1943~1945)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자욱으로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12:03 미완성비석. 큰바위에 새겨져있는 세개의 비신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아, 언제, 누가 어떠한 연유로 새겨 놓았는지 알 수 없다. 비석의 유형으로 볼 때 문경새재주변에 많이 남아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의 하나로 짐작될 뿐이다. 목민관으로서 진정으로 선정을 베풀어 주변사람들이 새기려하자 자신스스로 거절하여 백비로 남아 있는지, 아니면 폭정과 탐관을 일삼던 자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새기다 만 것인지 보면 볼수록 더욱 궁금증을 자아 내게 한다. 

   

12:11

 

12:20 귀틀집

 

12:22  바위굴과 새재우

먼 옛날 이 새재 길을 지나던 길손이 갑작스런 소낙비를 만나 이 바위굴로 피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바위굴에는 과년한 처녀가 역시 피를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졌단다.
그 후 처녀가 아이를 낳아 십수 년이 흘렀는데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놀림을 당하였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한 내력을 묻게 되었고 어머니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비의 엉덩이에 주먹만큼 커다란 검은 점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찾아 전국의 방방곡곡을 헤매게 되었는데 찾지 못하던 중 어느 깊은 산골에서 세찬 호우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근처의 주막에 들었는데 먼저 들어와 있던 중년의 선비가 말하기를 "어허, 그 빗줄기 새재우 같구나"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새재우"가 무슨 뜻이냐고 물은즉슨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같은 내용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자신의 내력을 밝히고 확인해보니 부자지간임이 밝혀졌다. 아이는 아버지를 모셔와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청춘남녀가 이 굴에 들면 사랑과 인연이 더욱 깊어져 평생을 헤어지지 않고 잘 산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문과는 달리 입구를 나무 발로 막아놓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12:25

 

12:25  

 

12:26

 

12:34

 

12:36 조곡관 

 

 

13:12

 

13:13 조곡폭포

 

13:15  

 

13:17 <산불됴심>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고문체의 표지석이었다. 이 표지석의 설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경북문화재 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표석은 행인들의 발길이 잦은 길가에 설치해 길손들에게 산불예방과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세운 것이다. 높이 157cm의 표석으로서 조선후기의 사회현상과 한글 사용에 대한 상당한 가치를 지녔으며 "됴심"은 "조심"의 옛말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13:30 꾸구리 바위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커다란 꾸구리가 살고 있었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바위 밑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흔들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꾸구리란 놈이 상당히 고약한 놈이어서 처녀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들어주었단다. 

 

 

13:32  철이 덜든 단풍나무.

 

13:33

 

13:33

 

13:36 용담폭포

 

13:36

 

13:37

 

13:38

 

13:47  

 

 

 

 

 

13:53

 

13:55

 

13:59

 

14:02  

 

14:02

 

 

 

 

14:06  

 

14:10

 

 

 

14:17 비석거리. 오른쪽에서 4번째 황색비는 철재비이다.  

 

14:18

 

14:19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