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여행

경남 진주 진주성

하시청천 2007. 9. 14. 17:27

 

 

 

 

조선시대. 조선 광해군 10년(1618)에 병사 남이흥이 내성의 동문을 고쳐 세우고 성문 옆에 대변루를 신축하였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전신이며, 고종 32년(1895) 경상도가 남북으로 분리될 때 관찰사 청사의 관문으로 영남 포정사라 했으며 도청의 정문이기도 했다.

  

 

 

 

 

진주성내에 위치한 청계서원에는 두 사당이 있는데 서편에 있는 사당은 경덕사(景德祠)로 은열공 관정 정신열선생을 모셨고
동편에 있는 숭은사(崇恩祠)에는 고려 공민왕때 전객령(정3품)치사(致仕)목면공(木棉公) 퇴헌(退軒) 정천익(鄭天益)선생을 모시고 해마다 음3월15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이다. 선조 40년(1607) 병사 김태허(?:1620)에 의해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2좌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의 [경상우도병마절도영]조에 의하면 "내성의 포루는 3곳이니 삼가, 의령, 곤양 등 3읍의 소속"이고 "외성의 포루는 9곳이니 진주, 단성, 초계, 거창, 사천, 함양, 남해, 합천 등 8흡 소속" 이라고 하였다. 1969년부터 진주성을 복원하면서 상징적으로 1개소만 복원하였다.

 

 

 

포루에서 내다본 진주시가지.  

 

창열사 

 

호국사 

 

 

 

 

척석루아래 진주 남강-조그마한 바위가 의암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제말장군과 그의 조카인 제홍록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제말(?∼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 ·김해 ·의령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고, 성주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제홍록은 숙부와 더불어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다.
비의 형태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등부분에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튀어나온 눈을 강조하여 토속적인 느낌이 든다. 머릿돌에는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다. 그 밑면에는 국화무늬를 장식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비문에는 제말장군과 제홍록의 공적을 적어 놓았다.
정조 16년(1792) 이조판서 서유린에게 글을 짓게 하여 비를 세웠다. 일제시대 때 일본관헌에 의해 비각이 헐리어 방치되었다가 1961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비각도 새로 지었다.

  

 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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